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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억과평화@뉴스레터 [조합원 칼럼] 이음 없는 두 가지 단상_조정현(목사, 기억과평화 이사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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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기억과평화 댓글 0건 조회 326회 작성일 23-08-22 15:17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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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음 없는 두 가지 단상

- 조정현 (목사. 기억과 평화 이사)


‘무감어수감어인(無監於水監於人)’ 묵자의 글입니다. 이런 옛말이 기록된 실제적인 배경이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간결한 그 뜻만 나누게 되는데, 이를 단순화 하면 ‘물에 자신을 비추어 보지 말고, 사람에게 비추어 보라’는 것입니다.

왜 이래야 할까요?
자기 자신을 물에 비추어 보면 무엇이 보이겠습니까? 외모가 보이겠지요. 자기의 기준으로 잘 난 모습이 보일 겁니다. 문제는 이 자기 기준을 세상으로 그대로 가져온다는 것입니다.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.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지도적 위치를 가지고 무엇인가 결정하는 힘을 가진다면 그 쓰임새가 어떨까요?

하지만 사람에게 비추어 나를 본다면, 물은 말이 없이 내 모습의 미세한 흔들림만 있지만, 사람은 말을 하고,굳이 말이 없어도 그 느낌을 내가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. 사람에 비추인 나는 내 삶일 것이고, 그 삶의 반향이 비추임을 당한 사람을 통해 여러 모습으로 나에게 온다면, 기쁘고, 분노하고, 갈등하고, 길을 찾고 하는 모습의 나를 알게 될 것입니다.

그렇다면 사람에 비추고 보고 다시 물에 비추어 본다면 보다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? ‘눈치보며 살자’는 말이 아니라 속된 말로 ‘자뻑’하지 말자는 뜻이라 생각됩니다.
예민함으로 귀 기울이고, 깨어있기 위해 노력하면서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배움을 얻지만 실제로 이를 내 삶에 맞추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.

시도 하나 떠오릅니다.
예이츠(William Butler Yeats)의 1920년에 발표된 ‘재림(The Second Coming)’ 의 몇 줄입니다.

‘사물은 붕괴하고, 중심은 무너진다
........
최상의 사람들은 확신이 없고,
최악의 무리들은 열정으로 광분한다.’
.......

2023년을 나와 관계없는 일인 것처럼 바라보니, ‘운동’이라는 큰 뜻을 마음에 품고 달려왔지만 붕괴와 무너짐을 지켜보며 확신 없는 어느 기득권의 ‘사람들’이 보이는 듯하고, 다른 모습으로 ‘혐오와 틀림’의 열정이 넘쳐 광분하는 ‘무리들’이 보이는 듯 하지만 명확히 구분되어지지 않는 지금 시대에 누가 감히 ‘최상’과 ‘최악’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?

다만 자신만이 치우치지 않고 미래를 지향한다는 이들을 통해 지금의 ‘붕괴되고, 무너짐’을 보면서 무엇이든 감당치 못할 만큼의 힘을 갖고 휘두르는 그 끝은 ‘해체’되는 것이 역사와 자연이 우리에게 준 가르침입니다.

‘기억을 지우면 평화가 온다’라는 유언비어가 사실로 주입되는 지금의 시대지만, 1923년의 학살이 100년을 지나며 맞는 2023년에는 ’기억을 살리면 평화가 온다’라는 진실의 힘이 솟구치는 재림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.